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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평 필사노트

[필사노트] 플라톤의 대화편(플라톤)

by 책장인 김세평 2023. 9. 25.

플라톤의 대화편(플라톤), 출판사 창

01 플라톤의 대화편(플라톤)
나는 두려움이 있는 곳엔 부끄러움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나 부끄러움 있는 곳엔 두려움도 있다네.
두려움이 부끄러움보다 더 범위가 넓으니까
부끄러움은 두려움의 일부야.
마치 홀수가 수의 일부인 것처럼.
그러므로 두려움 있는 곳엔 언제나 부끄러움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옳아.
이 사람보다는 내가 더 지혜가 있다. 이 사람은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모르고 또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훌륭하다고 소문 난 사람들이 실은 거의 모두 사려가 부족하고, 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려가 깊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르고 저지른 과실 때문에 이런 곳으로 사람을 끌어내는 것은 법이 아닐세. 오히려 개인적으로 만나서 가르쳐 주고 타일러 주는 것이 법이야.
그런데 자네는 가르쳐 주려고는 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이런 곳으로 끌어내었는데, 여기는 징계를 받아야 할 사람이 올 곳이지, 가르침을 받아야 할 사람이 올 곳이 아닐세.
지혜를 사랑하고 여러분에게 권하고 누구를 만나든 제 생각을 말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신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돈에 의하여 덕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덕에 의하여 돈이나 그 밖의 모든 것이,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인간을 위하여 좋은 것이 생긴다
저는 몇 번 죽임을 당한다 해도 다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요약영역(내용 정리, 나에게 적용)


02 플라톤의 대화편(플라톤)
지금도 이와 같이 변론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남들처럼 변론하고서 살기보다는 이와 같이 변론하고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죽지만 않으려고 궁리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게 인식하려면 육체를 떠나야 한다는 것은 분명. 영혼이 그 자체로 돌아가야 사물들을 그 자체로 볼 수 있을 거야.
비로소 우리가 구하려고 했던 지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일세.
그런데 이 지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이 아니고, 죽은 후의 일일 거야.
쾌락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무절제라 부르지만, 저들이 어떤 쾌락을 지배하는 것은 다른 쾌락에 지배되어 있기 때문이야. 이런 의미에서, 나는 저들이 무절제함으로써 절제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모든 물건은 교환할 수 있는 진짜 화폐가 하나 있을 걸세. 그것은 곧 지혜야.
모든 참 덕은 지혜와 짝하는 거야.
그러니 이러한 여러 좋은 것으로 되어 있는 덕도 지혜로부터 분리되어 저희끼리 교환된다면, 그것은 덕의 그림자일 따름이고, 그 속에는 아무런 자유도 건전함도 진실도 없는 거야.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획득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획득한 지식을 태어날 때에 잃어버리고 나중에 감각을 사용하여 다시 회복하는 것이라면, 배워서 안다는 것은 바로 본래 가지고 있던 지식을 회복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을 상기라고 부르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닐까?
요약영역(내용 정리, 나에게 적용)


03 플라톤의 대화편(플라톤)
영혼이 육체 속에 갇혀 있는데
감옥의 창살을 통해서만 사물을 볼 수 있고
육욕 때문에
그 속박의 공범자가 되고
영혼의 해방은 철학이 영혼에게 눈과 귀와 그 밖의 감각기관들이, 그런 것들로부터 물러서도록 하며, 자신을 가다듬어 자신을 신뢰하고, 또 순수한 존재에 대한 자신의 순수한 이해를 신뢰하며, 다른 통로를 통해서 자신에게 오는 그리고 변하기 쉬운 모든 것을 신뢰하지 않도록 함
최악의 해악
해악이란 쾌락이나 고통의 감정이 가장 강렬할 때
영혼이 육체의 하여 가장 심하게 구속되는 것은 바로 이런 상태
모든 쾌락과 고통은 못과도 같아서, 영혼을 육체에다 넣어 결부시켜 마침내 육체와 닮게 하여 육체가 옳다고 하는 것을 같이 하기에 이르도록
철학자의 영혼은 이렇게 생각할 거야. 즉 철학이 영혼을 해방시켜 주는 것 영혼은 오히려 정욕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따라서 언제나 이성 속에서 살면서 참되고 신적인 것을 바라보며.
인간적인 모든 악에서 해탈
위험이라니 무슨 위험인가요?그건 논의를 싫어하는 자가 되는 걸세.
논의를 싫어하는 것 인간의 가장 나쁜 병폐.
논의를 싫어하는 것이나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모두 같은 원인에서 생기는 거야. 그 원인이란 세상을 모르는 것이지.
인간성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아주 선한 사람이나 아주 나쁜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 중간임을 알 것이니 말일세. 이 모든 것에서 극단적인 것은 드물고 중간 것이 많은 거야.
요약영역(내용 정리, 나에게 적용)


04 플라톤의 대화편(플라톤)
논쟁을 할 때 문제 속에 진리가 어디 있는가 지금 나와 저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이것 하나 밖에 없다네.
저들은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청중에게 납득시키려 하는데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납득시키려 하고 있는거야. 진리를 더 생각해 주기 바라네.
아름다운 자체가 거기 있거나 아름다운 자체에 참여함으로써만 아름다운 것 모든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자체에 의하여 아름답게 된다는 것은 내가 강력히 주장하는 것일세.
이것은 나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답이 아닐까 하네. 이 원리에 의지하면 절대로 잘못된 데 빠지지 않을 것이며, 또 아름다움 자체에 의하여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아름답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나 또 다른 누구에게나 안전한 답이 되리라 생각하네.
어떤 것에 반대되는 것은 아니면서도 그 어떤 것 속에 있는 반대적인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들 가령 3은 짝수에 반대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짝수란 성질을 받아들이지 않는단 말이야. 도리어 언제나 거기 반대되는 성질을 띠고 있단 말이야.
즉 반대는 반대를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또한 어떤 것이나 그 반대되는 것이 들어 있는 것에 접근할 때에는 이 반대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 말이야.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뭐라고 하지?
불사라고 하지요.
영혼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영혼은 불사인가?
,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영혼의 불사가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오오 소크라테스.
요약영역(내용 정리, 나에게 적용)


05 플라톤의 대화편(플라톤)
그런데 사람은 자기에게 결여되고 없는 것을 사랑한다는 데 대해서 우리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나? 그러면 에로스는 아름다움을 결여하고 있고,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생각인가?
아직도 에로스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겠는가?
자네는 좋은 것은 또한 아름답기도 하다고 생각하나?
에로스는 아름다움을 결여하고 있고, 좋은 것은 아름다운 것이니, 에로스는 또한 좋은 것들도 결여하고 있겠군.
아름답지 못한 것은 추하고, 좋지 못한 것은 나쁘다고 억지를 부르지 마세요. 선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추하고 악하고 생각해서는 안 되지요. 오히려 두 가지 것들의 중간에 있는 거라고 봐야 할 겁니다.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는 자들은 결국 무엇을 사랑하는 겁니까? 그것들을 획득하는 것이지요.
즉 아름다운 것을 획득하는 자는 결국 무엇을 얻는가?
아름다운이라는 말 대신에
좋은이라는 마을 써서,
그 좋은 것을 획득하고자 하는 거지요.
이 욕구와 이 사랑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것이며, 또 모든 사람이 언제나 좋은 것을 가지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나요? 사실 모든 사람이 같은 것을 사랑하며 언제나 사랑하고 있다면, 왜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있다고 하지 않고 도리어 어떤 이는 사랑하지만 어떤 이는 그렇지 않다고들 말하는 겁니까?
그건 우리가 여러 가지 사랑 가운데 한 가지만을 뽑아내어 그것에다 사랑이라는 전체의 이름을 붙여 놓고 다른 종류의 사랑에는 다른 엉뚱한 이름을 붙이고 있기 때문 창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
모든 기술에서 그 과정은 창작이요, 모든 기술자는 창작자이지요.
그런데 그들이 모두 창작자라고 불리지는 않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요, 그 일부, 즉 음악과 운율
요약영역(내용 정리, 나에게 적용)


06 플라톤의 대화편(플라톤)
출산이란 낡고 늙은 것 대신 새롭고 젊은 것을 남겨 두고 가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학습이라는 것도 지식이 도망쳐 버린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겁니다.
학습이란 도망쳐 버리는 대신 새로운 지식을 집어넣어 우리의 지식이 전과 다름없는 것인 양 보이게 하는 거지요.
불사적인 것이야 말로 그들이 사랑하는 것 자식을 낳고, 이로써 불사의 추억과 행복을 영원무궁 자기 자신에게 확보하리라 생각하는 것
육체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으로 더 잉태하기를 잘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예지와 온갖 덕 아름다운 예지는 나라와 가정의 질서를 바로잡는 일에 관계된 것
우리가 절제와 정의라 부르는 것
그 영혼이 이런 덕을 잉태하고 있는 사람도 장성하면 자식을 낳고 출산하기를 원하는 겁니다.
자식을 낳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을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육체를 환영하며, 또 아름답고 고상하고 잘 자란 영혼을 만나게 되는 날이면 그 육체와 영혼을 한 가지로 반가이 맞이하고, 또 이와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덕에 관해서, 훌륭한 사람이 어떠해야 하며 어떻게 행해야 한다는 것에 관해서 터놓고 이야기하여 그를 교육해 보려 하는 거예요.
정신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으면 설사 그 용모가 그다지 환하지 못할지라도 만족하여 살아야 하고 보살펴 주며, 그리하여 자식을 낳고 또 그 젊은이들을 훌륭하게 해 줄만한 이야깃거리를 찾아 이야기해 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육체의 아름다움이란 보잘것업는 것임을 잘 알 수 있는 겁니다.
지식으로 나아가, 지식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보아야 합니다.
다시는 노예처럼 한 가지에 얽매여
어떤 한 가지 일에만 만족하여 구차해지고 속이 좁아져서는 안 됩니다.
요약영역(내용 정리, 나에게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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